수요: 서로에게 고객이며 스승이 되는 마을 사람들

오늘 날의 지구촌에는 8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함께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상인의 시대가 시작된 1500년 대의 인구는 5억명 정도였다. 그 후 산업혁명을 지나면서 급속도로 증가하여 1800년 중반에 인구는 10억명을 돌파했다. 이후 미사일이 발사하듯이 그야말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서 오늘날 80억의 인구가 되었으며, 그 인구가 오늘의 세계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Source: https://ourworldindata.org/population-growth-over-time

한 때 인구가 많다는 것이 한 국가가 가난해지는 원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의 일반 국민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긴 1970년 대 이전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면서 산아제한이 중요한 국가 정책으로 실행되었다.

경제학자들 중에도 인구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들이 있다. 특히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밖에 증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인구가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 인구가 가난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인구의 증가는 시장에 필요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 물론 수요란 구매력을 가지고 있는 욕구를 가리키는말이니, 아이의 탄생 그 자체를 수요의 증가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 때문에 아이의 부모가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인구의 증가는 수요를 만들어 내고 수요는 시장의 크기를 키운다.
후발주자였던 미국이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을 따라잡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시장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이민행렬은 거대한 수요를 낳았고 그 수요를 잡으려면 대량생산이 필요했다. 미국은 그런 수요에 맞추어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과 조직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 이기심은 다양한 욕구로 이루어져 있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욕구,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성장하고 성공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사랑하고 나누고 싶은 욕구 등이 그것이다. 거기다 인간은 매우 유사하지만, 또 조금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거나 다른 단계의 욕구수준을 가진다. 그런 차이 때문에 더 많은 거래가 이루어 진다. 모든 인간이 똑 같다면 거래도 매우 제한적일 것이며, 그렇다면 시장도 발전하기 어렸웠을 것이다. 전통경제학은 이런 인간의 다양한 욕구에 대해 비교적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지만, 경제성장에 있어 인간의 욕구문제는 중요한 요인이다.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욕구의 단계도 경제성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아래의 욕구인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어느정도 충족되어야 상위욕구인 관계나 성장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인간은 기본적인 욕구부터 갈망한다는 이야기다. 명예나 가치를 죽음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체면보다 생존과 안전이 우선이다. 배가 고프면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어코디언을 팔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실제로 우리의 경제는 인간의 아래 단계의 욕구부터 채우기 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면서 성장해 왔다. 이제 시장에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제품은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한다. 명품을 찾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글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더 나아가 자아성장과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기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되기도 한다. 미래의 성장 동력은 아마도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하면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을 연상한다.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경제학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공급사이드라는 한 측면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쪽인 수요사이드에는 인간의 욕구가 있다. 사실은 양쪽이 상호 영향을 주며 경제가 발전해왔다. 인간의 욕구가 과학과 기술발전의 동기가 되었고, 다시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욕구란 결국 삶의 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엘빈 토플러는 시대의 변화를 새로운 물결로 설명한다. 인류는 농업혁명이라는 제 1의 물결, 산업혁명에 의한 제 2의 물결 그리고 정보혁명에 의한 제 3의 물결을 만들어내며 성장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삶의 질이란 것은 단순히 물질이 많아짐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보다는 그야말로 질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질은 인간의 상위욕구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했던 기업은 고객의 욕구가 점점 복잡해진다는 사실에 적응해야 했다. 지구촌의 성장은 점점 세분화되어 가는 욕구에 부응하는 신제품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새로운 욕구는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고,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기업들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게 된다.

인구의 성장은 수요뿐 아니라 공급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경제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력의 증대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구의 증가는 노동력을 증가시켜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수요와 거기에 따르는 투자의 증대를 가져와 시장을 확대시킨다. 그래서 인구를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의 경제학자들 생각이다.

오늘날 세계경제를 이끌고 갈 차세대 국가로 브릭스(BRICs)를 꼽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이 브릭스 4개국은 1990년대 말부터 신흥경제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들 나라의 경제가 성장의 동력이 되리라고 보는 이유는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들 4개국은 세계면적의 30%가 되는 영토에, 총인구는 2002년 기준으로 세계인구의 43%를 차지하고있다.

경제학에서는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한다. 경제발전은 경제성장보다 좀 더 광의의 개념이다. 경제성장은 경제의 규모나 일인당 GDP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경제발전은 제도를 포함한 개념으로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등 산업의 구조가 고도화되고 소득분배가 개선되며 환경이 보다 깨끗해지는 등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가리킨다.

경제성장은 양적으로 측정하고, 경제발전은 여기에 질적인 점을 고려한 개념이다. 따라서 경제가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인구증가율 보다 경제성장률이 높다는 말이 된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 보다 높을수록 일인당 GDP가 증가한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때를 맞추어 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인구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가속화시켰는지 아니면 경제가 성장함으로써 인구가 더 증가했는지 인과관계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인구가 늘면서 경제성장이 인구성장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일인당 소득이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인구의 증가는 수요가 커진다는 측면도 있지만, 생산력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인구가 많다는 것은 시장이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모이면 서로 거래할 것이 많아져 시장이 커진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늘어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서로의 만남을 통해 거래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1+1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며 기아급수적으로 발전한다. 단순히 생산성에서의 시너지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기술이 네트워크효과를 내며 급속히 팽창하며 성장한다. 그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 생각이 태어난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을 도시라고 부른다. 시장이 커지고 상인이 늘어나면서 상업도시가 생겨났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인력을 원할이 공급받기 위해 공업도시가 탄생했다. 그 곳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다. 앨프리드 마셜은 그런 지식을 ‘공기중에 있는 지식(knowledge and information that are ‘in the air’)이라 했다. 그리고 도시가 혁신과 진보의 원천이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술의 신비는 더 이상 신비가 아니다. 그 신비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공기 중에 있고,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그것을 배우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또 나도 모르게 남에게 가르치는 일은 오늘날 사람들이 더 자주 만나기 때문에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중이다. 도시는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고객이었으며 또 스승이었다. 사람이 만나는 곳이 시장이며 또 삶의 대학인 셈이다.

한 동안 동양이 유럽보다 더 잘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생산량이나 소득을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단순히 도시 인구만으로도 추정이 가능하다. 보통 국가의 생산량은 도시 인구와 비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의 이동>에 의하면 13세기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중국의 항저우였다. 당시 유럽 최대 도시는 이탈리아의 베니스로 인구가 16만 명에 불과하였지만, 항저우의 도시의 인구는 60만 명이었다.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를 ‘킨사이’ 라고 서방에 소개했는데, 이는 ‘천상의 도시’ 라는 뜻이라고한다. <부의 이동>의 저자 그렉 클라이즈데일은 항저우가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찬란한 도시이기 때문에 킨사이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의 <리오리엔트>에 의하면 17세기 초 중국의 난징과 광저우의 인구가 각각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반면 당시 서유럽 전체의 도시 인구는 모두 합쳐도 중국 광저우시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의 도시가 급속히 발전한 것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이다. 도시를 통해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의 집적되고 그 곳에서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과 혁신이 이루어 졌다. 미국의 역동성도 끊임없이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현재 경제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이 인구 추이일지 모른다.

Source: U.S. Census Bureau
Website: populationeducation.org/resource/u-s-population-and-projection-1790-2050-inf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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