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부동산이나 미술품, 음악 저작권 같은 고가 실물 자산을 주식처럼 지분을 쪼개 거래하는 조각 투자 활성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2월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STO를 포함한 조각투자 시장이 급 물살을 타면서, 급기야 작년 말에는 증시의 테마로 부상했었다. 그 때부터 2024년 1월까지의 분위기는 2000년 새 밀레니엄이 시작하며 불었던 B2B 커머스를 연상시킬 정도다.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신시장 개척을 꿈꾸는 벤처기업은 물론 선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거대 증권회사들까지 나서 합종연횡을 통한 세불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때 맞추어 언론도 관련 기업에 대한 기사를 이전과 다른 속도와 양으로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조각투자 업체 들의 1월 달 성적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당장 지난해 말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미술품 조각투자 주식 공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우에 대한 조각투자를 위해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던 증권신고서는 반려가 되었다는 소식도 있다.
조각투자 시장 개화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청약 이벤트는 흥행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청약을 포기하는 실권주, 청약 물량조차 채우지 못한 미달 사태도 발생했다. 지난 19일 앤드 워홀의 ‘달러 사인’을 기초자산으로 주식 배정이 이뤄진 서울옥션블루의 투자계약증권은 청약 미달 사태를 겪었다. 전체 7억원 중 6억3000만원 규모를 투자자에게 모집하려고 하였으나 실제 청약 금액은 5억3850만원으로 청약율이 85.4%로 전체 청약에 미달 되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펌킨’을 기초로 한 조각투자는 투자계약증권 1호 공모라는 점에 관심이 모여 청약 자체는 흥행을 터뜨렸다. 11억880만원 규모 공모에 72억570만원이 몰려, 청약 경쟁률이 6.5대 1에 달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청약 물량 중 82%가 비례배정을 받았고 18%의 경우 실권주가 발생했다. 실권주란 유상증자 시 주주에게 배정된 신주 중 주주가 인수하지 않은 주식을 뜻한다. 결국 청약자가 청약대금을 미납한 것을 의미함으로, 청약자의 18% 정도가 청약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대한데일리 1월 31일 지난해 금융당국의 사업재편 이후부터 2024년 1월까지를 조각투자 시장의 1라운드라고 보고, 관련 4개사의 1라운드 성적표를 기사로 내보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실제로 진행했거나 홍보했지만 실제 조각투자 증권을 발행한 업체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뮤직카우, 아트앤가이드(열매컴퍼니), 소투(서울옥션블루), 아트투게더(투게더아트) 등 4개 회사 뿐이다. 금융감독원이 이 4개 회사가 발행한 증권에 대한 일반투자자 청약을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언급하였듯이 뮤직카우를 제외한 3개사가 발행한 조각투자 증권에 청약 미달이나 실권주가 발생했다.
일단 미술품 조각투자 청약이 완판에는 실패한 것이다. 뉴스토마토는 안영준 하나증권 연구원의 입을 빌려 “현행법상 유동화에 대한 우려가 있어 투자 메리트가 떨어진다고 본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덧붙여 조각 투자 업체들이 미술품을 매입한 가격에 제반비용과 운송비, 전시비용을 포함시켜 공모액을 설정해 10~15% 부풀려진 것도 완판하지 못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우려한대로 유동성이 가장 큰 문제일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는 조각투자를 위해 발행된 증권이 거래될 시장이 없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환급성이 떨어지는 투자 대상이다. 하다 못해 비상장 주식도 거래 플랫폼들이 있는데 투자계약증권 거래 시장은 현행 법상 불가능하다. 거래 플랫폼이 없다는 것은 결국 유동화, 현금화가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거래소 즉 조각 투자 증권 시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현재 법안 개정안은 국회 계류 상태다.
지난 16일에는 송아지 조각투자 플랫폼 ‘뱅카우’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11일만에 철회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조선일보는 이 상황을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인 투게더아트와 비교하고 있다. 투게더아트는 제출 20일 만에 증권신고서를 자진 철회했는데, 결과적으로 기초자산인 미술품의 매입 과정 등에 금감원이 객관성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다.
이런 성적표가 나오고 있지만, 조각투자에 대한 제도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은 아직 유효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과 금융계의 큰 손들이 합종연횡을 계속하고 있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머니투데이 2월 2일자 인터넷 기사는 코스콤과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컨소시엄을 주목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STO(Security Token Offering, 토큰증권 발행)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는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코스콤은 대신증권과 토큰증권 플랫폼 시범사업 추진 협약을 맺었으며, IBK투자증권과도 토큰증권 플랫폼 이용 관련 MOU를 체결했다. 이와 별도로 KB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도 STO 시장을 위한 인프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3사는 지난해 9월 증권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대형 증권사들이 공동 인프라를 꾸리기 위한 목적으로 컨소시엄을 만든 바 있다.
다시 주요 변수를 쥐고 있는 당사자는 정책 당국과 국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2월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 시행을 위한 전자증권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발표했다. 그리고 2023년 7월 13일 STO 발행 및 유통을 허용하는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 입법 공정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공개된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전자증권법을 개정해 분산원장(블록체인)을 증권 전자등록을 위한 장부에 포함하고,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전자증권법 개정안은 STO에 활용되는 핵심 기술인 ‘분산원장 정의와 규율 근거’를 신설하고, 토큰증권 발행인이 직접 STO에 나설 수 있도록 허용하기 위한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등록제’를 신설하는 내용이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투자계약증권 유통 규율 근거와 토큰증권 거래를 위한 장외거래중개업자 인가를 만드는 내용이 들어있다.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다자간 거래를 지원하는 장외거래중개업자를 신설해 장외시장 유통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장외거래업자에는 예탁금 별도 예치 등 증권사와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며, 장외거래업자가 발행·인수·주선한 증권은 유통을 금지해 발행과 유통을 분리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후 전자증권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법안 심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시장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거래비용과 투명성 같은 거래의 조건이 만들어져야 발전하게 되어있다. 국내 조각투자 시장의 앞길은 결국 당국과 입법부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