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유동성 함정

통화정책: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유동성 함정

단기적으로는 통화량이 경제의 움직임에 어느정도 영향을 준다는 데에는 경제학자들간에 의견의 일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통화량을 조절함으로써 어느정도 미세조정이 가능하다는 데에도 동의하고 있다. 미세조정의 목표가 되는 것은 보통 물가의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부터는 2.5%선의 물가상승률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어느 나라고 중앙은행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과는 달리 ‘분산화된 중앙은행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12개의 지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이 있고, 이들을 워싱턴의 FRB가 통제한다. FRB 의장은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실제 FRB 체제는 상당히 분권화돼 있다.

우리가 FRB라고 하면, 12개의 지역 연방준비은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은행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을 의미하는 것이다. FRB의 B는 Bank가 아니라 Board라는 말이다. 또한 언급한 바와 같이 연방준비은행에 미국의 민간은행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종 음모론에 나오는 것처럼 금융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FRB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미국의 연방은행 소유구조는 연방은행법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 상업은행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만들어 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 주식회사의 주식이나 이익단체의 회원이 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말이다. 연방은행의 주주들은 의무만 있지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FRB의 의사결정은 FRB의 이사들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결정을 하는데, 이 위원장과 이사들은 주주인 은행들이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임명하게 된다. 애초부터 미국의 연방은행을 정부소유로 하느냐 민간소유로 하느냐의 논쟁은 정권으로부터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의 문제이지 소유를 한다고 해서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부터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따라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은행안에 금융통화위원회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다. 1997년 당시만 해도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자리는 재무부 장관 몫이었지만, 현재는 한국은행 총재가 맡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 그리고 유럽 모두 중앙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8~19세기 미국에는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은행이 두 차례 존재했다가 사라져 버렸다. 당시는 모든 것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자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1907년 뉴욕에서 시작된 예금인출사태로 다시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1913년 연방준비제도법에 의해 오늘의 시스템이 만들어 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국의 FRB와 같은 중앙은행이 한 나라의 통화를 조정할 수 있을까? 그 정책 수단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대출

통화량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중앙은행도 은행이 일반기업이나 가계에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행에 자금을 대출해준다. 그렇다고 기업이나 개인이 한국은행에 가서 직접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 정녕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싶으면 각종 정책금융에 대해 알아본 뒤, 은행의 문을 두르려야 한다. 

반대로 정부가 정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싶다면 이 역시 은행을 통해서 해야 한다. 과거 민간은행이 기업의 어음을 할인해 주고 그 어음을 가져오면 중앙은행이 어음을 재할인해서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에 이를 재할인제도라 부르는 것이다.   

은행들은 자금부족이 발생하면 일차적으로 자신들끼리 거래하는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정부가 중소기업이나 특별한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유용한 정책수단이다. ‘정책금융’이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이 재할인정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은행이 특정부문에 대출하면 한국은행은 이중 일정부분을 낮은 금리로 은행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잘못하면 통화량을 증가시키고 시장원리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해 우리나라는 1994년 총액한도대출제도를 도입했다. 목표 통화량을 미리 정함으로써 무분별하고 선심쓰는 듯한 대출의 폐해를 막기위해서다. 실제로 우리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관치금융이라는 것이었다. 정부와 재계가 손발을 맞추어가며 은행의 돈을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몰아 주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하튼 이렇게 전체한도를 미리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일정한 조건에 따라 각 은행에 자금을 분배하게 된다. 결국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국가 전체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을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개시장조작

중앙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고서도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또 있다. 정부가 최초 돈을 찍어낼 때 중앙은행에 건네 주었던 국채를 기억해 보자. 중앙은행은 이 국채를 이용해 국가의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채를 내다 팔게 되면 시중의 돈이 중앙은행으로 들어와 사회에 돌아다니는 돈이 줄게 된다. 채권도 일종의 돈이라고 치면, 유동성이 좋은 돈을 유동성이 떨어지는 돈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통화량을 늘리고 싶으면 반대로 국채를 사들이면 된다.

이 간단한 정책이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사용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정책수단이다. 그리고이 정책을 공개시장조작이라고 부른다. 중앙은행이 공개시장조작 때 활용할 수 있는 국채는 다양할 수 있지만, 특별히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 또는 줄여서 통안증권이라고 부르는 국채를 발행하기도 한다. 과거에 공개시장조작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국채의 양이 적었기 때문에 시중에 공급된 통화를 환수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발행한 것이다.  

또한 국채를 사고 팔때도 국채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국채의 환매조건부매매(RP: Repurchase Agreements)라는 수단을 활용한다. 따라서 RP거래란 국채를 담보로 자금을 주고 받는 형식을 가리킨다. 한국은행이 시중자금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면 국채를 직접 매각하는 대신 국채를 담보로 민간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끌어오는 경우를 RP 매각이라 한다. 반대로 즉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국채를 담보로 잡고 대출해 주는 것이 RP 매입이다. 국채를 한 곳에 나두고 말로만 사고 파는 격이나 결국은 국채를 사고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금리조절

이렇게 국채를 사고 팔면서 통화량을 조절할 때 함께 사용하는 정책수단이 기준금리다. 기준금리란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이며, 국채를 거래할 때 적용되는 금리다. 사실 금리란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을 조절함으로써, 은행의 대출가격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은행에 있어 자금조달의 비용은 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오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리에 의해 결정되며 그것이 기준금리다.  

한 때 이 기준금리로 금융기관간의 단기거래에 적용되는 콜금리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수요와 공급에 의해 오르고 내려야 할 콜금리가 점차 ‘고정금리화’ 되어 가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발표하면, 상황이 어떻게 되든 한국은행이 콜 금리가 기준금리와 같아지도록 만들 것이라고 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2008년 3월부터 1일짜리 콜금리에서 7일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금리로 바꾸게 되었고, 이로써 콜금리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움직이는 조금은 살아있는 금리가 되었다.

금리는 일종에 돈에 대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가격처럼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콜금리의 예처럼 정부가 금리를 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자, 금리는 시장의 기능 일부를 상실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금리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정책이 되었다는 말이다.

가장 확실한 정책효과 역시 금리다.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먼저 중앙은행이 통화를 늘리거나 기준금리를 낮추면 가장 먼저 단기금리가 하락한다. 그렇게 되면, 금융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기자금을 차입하여 회사채나 국채 같은 장기채권에 투자하려 할 것이고, 이러한 수요증가는 채권가격의 상승을 가져온다. 채권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금리의 하락을 의미한다.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니 금리가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다시 채권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비교적 고수익인 개인이나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려 할 것이고 대출을 늘리려면 대출금리가 떨어져야만 한다. 대출금리와 회사채금리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기업이 자금을 싸게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은 싼 대출을 이용해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그렇게 기업들이 투자를 늘린다면 전체적으로 경제성장을 가져 올 수 있다.

금리는 개인에게도 효과를 미친다. 금리가 낮다면 사람들은 저축을 회피할 것이고 그만큼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은 늘어난다. 반면 금리가 높다면 사람들은 소비보다는 저축을 더 많이 하려 할 것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도 대출을 기피하게 된다. 이렇게 금리가 상승하면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따라서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리려 할 것이다. 소비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반대로 개인이나 기업 모두 다른 조건에는 변함 없이 금리만 오르면 돈을 빌리는 것에 신중하게 되고 그러면 민간 전체로 사용할 수 있는 통화의 양은 줄어 들게 되어있다. 돈의 양이 줄어들면 그만큼 물건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작아진다. 더 나아가 금리가 오르면 수요도 줄고 생산도 줄게 된다. 결국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나 제품을 소비해야 할 소비자 측에서 봐도, 금리가 오른다고 하는 것은 경기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일반적으로 금리가 낮아지면 주가는 상승하는데 이는 금리하락으로 예금이나 채권매입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낮아져 투자가들이 대체투자수단으로 주식매입을 늘리기 때문이다. 주식과 채권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두 개의 대안이다. 만약 이로 인해 주가가 상승한다면, 기업이나 개인들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 또는 부가 많아지므로 투자나 소비가 늘어나 경제활동이 왕성해진다. 이렇게 하나의 경제변수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체 경제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다.

지급준비율 변경

정부가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는 또 하나는 은행이 새로운 돈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언급했던 지급준비율을 이용하는 것이 있다. 은행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예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예금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중앙은행에 맡겨놓아야 한다. 이 정책은 금융기관 파산으로부터 예금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함께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올 경우를 대비해 은행에 어느정도 돈이 예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지급준비율을 통해 돈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통화정책의 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즉, 준비율을 높이면 은행들은 더 많은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되므로 시중에 돈은 줄어들게 되고 반대로 준비율을 낮추면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면 되니까 시중의 돈은 늘어나게 된다. 다시말해 지급준비율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단 지급준비금은 무이자이므로 금융기관의 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지급준비의무가 없는 은행이외의 다른 금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지급준비율은 예금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평균 지급준비율은 7%수준이다.

은행의 대출을 제한하는 요소로 BIS 비율이라는 것이 있다. BIS 비율은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줄인 말로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이 1988년 7월 각국 은행의 자본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다. 대출이라는 위험자산에 대한 안전장치로 자기자본을 일정수준 이상 가지도록 은행들에게 권고하는 비율이다. 즉, 은행이 대출해 준 기업이 망해 대출금을 대부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최소한 몇 % 정도는 자기자본으로 챙겨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급준비금 역시 은행에게 얼마 정도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으라고 권고한다. 결국 은행의 유동성을 이중으로 제한하는 수단이 된다.  

BIS 기준은 정부의 통화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경기가 어려워지면 통화량을 늘려야 하는데, 은행이 먼저 BIS기준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꺼리게 되면 중앙은행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여하튼 통화량이나 금리조절로 통화가 안정된다면 그리고 경제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정부의 역할이나 경제학자들의 역할을 쉬워진다. 그러나 뜻대로 잘 안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경기침체 시 정책당국이 통화를 늘리더라도 시중에 통화가 늘지 않아 경제활성화를 자극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것이 유동성 함정이다.

유동성 함정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그것이 은행을 통해 기업으로가고, 기업은 수익을 올려 은행에 이자 잘 내주고, 이익을 낸 은행과 기업은 직원들에게 월급 잘 주고, 개인들은 그 월급으로 시장에 나가 소비하고 그래서 한 나라의 경제가 점점 살아나고 하는 선순환이 정책결정자의 희망이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금리도 내리고 돈도 풀어낸다. 그런데 경기침체시에는 늘 유동성 함정이라는 방해자가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다.  

유동성 함정이란 통화를 많이 공급하고, 금리를 아무리 낮추어도 쉽사리 돈의 흐름이 실물경제까지 내려가지 않은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시중에 돈도 늘어나지 않고 대출금리도 내려가지 않는다.

만약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시중에 돈이 줄었다고 판단하면, 각국의 정책당국은 돈을 풀어 경제를 자극하려 할 것이다. 2008년 세계에 몰아 닥친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각국이 통화량을 늘리고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은 시중의 통화량을 늘리려는 것이다. 즉 퍼붓기식이 되었던 헬리콥터로 뿌리기 식이 되었던 유동성을 지원하여 신용경색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시중에 자금은 늘어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금융기관이 어려워진 자신들의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자금을 풀지 않게 된다. 둘째로 과거 대출을 잘 해주던 기업도 위험이 커져, 자금을 쉽게 빌려주기가 어렵다. 셋째 개인이나 기업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중에 통화량이 늘지를 않는다. 넷째 시중의 돈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 늘어야 증가하게 되는 데,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기존의 부채마저 상환하도록 만든다. 결국 통화량은 더 줄게 되어 있다. 부채가 돈이기 때문이다. 대출, 예금, 대출, 예금의 과정을 거쳐 시중의 통화량이 증가하는데, 너도나도 부채를 상환하게 되면 시중의 자금은 빠르게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돈을 풀어도 문제고 흡수해도 문제다. 그래서 오도가도 하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이다.

실제로 2009년 초 한국의 상황이 그랬다.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늘리지만,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들에게 돈을 더 마련해 자본금을 늘리라고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BIS 자기자본 비율이라는 것이 있으니, 은행들은 시중의 돈을 끌어와 자기자본을 늘려야 한다. 가뜩이나 돈이 돌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 은행들은 오히려 시중자금을 끌어 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대출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위가가 닥치면 과거에 건전하던 기업의 위험도 역시 높아지고 만다. 개인도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더욱 신중해 지기 시작한다. 돈을 빌리는 기업이나 개인이 없으니, 당연히 부채로 만들어지는 돈은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기대했던 통화량의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유동성 함정은 오늘 날의 일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공황에서도 일본의 부동산 버블에서도 나타났다. 이 함정에 빠지면 여지없이 통화정책에 딜레마가 생기고 만다.

정부가 통화량이나 금리를 조절함으로써 경제를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돈으로 인한 효과는 시차가 있을 뿐아니라, 여러 과정 또 다양한 과정을 통해 확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의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함으로써 통화량을 통한 경제운영은 더욱 어려워졌다.

더구나 통화팽창에 의한 경제성장이나 부의 증가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잘못될 경우 물가가 상승하고 금융자산에 거품이 생긴다. 만약 경제에 이상신호가 온다면 결국은 우리가 경험한 다양한 금융위기 그리고 결국에는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