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술: 인간이라는 자원을 움직이는 기술

사회적 기술: 인간이라는 자원을 움직이는 기술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경쟁력을 과학이나 신기술에서 찾는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기술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신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말이다. 지식사회로 갈수록 사회적 기술은 더 중요해 지고 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MIT의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는 노동력과 자본 설비의 확충이 경제성장에20%의 효과가 있고, 노동인구의 교육 수준 향상이 30%이며 기술 혁신과 노하우 증가는 50%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기술이란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그래서 기업은 사람을 채용하고, 업무를 배정하고, 조직하고, 교육하고 또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을 가장 중시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인재가 국가의 경쟁력을 만든다. 그래서 한 국가의 백년대계는 교육이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교육을 중요한 투자행위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 날의 어떤 경제학자도 인적자본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핀란드는 52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2007년 1인당 GDP가 4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며, 국가경쟁력면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다. 2001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경쟁력에서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2차세계 대전 직후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소련에 의존도가 높은 핀란드 역시 혹독한 경제위기를 치러야 했다. 청년 실업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경제가 어려웠던 나라다. 그런 핀란드가 오늘날 지구촌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하나가 된 것은 무엇보다 교육의 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에 교육제도를 개혁하여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산학협동과 실무위주의 교육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자, 높은 세금부담에도 매년 2만개가 넘는 기업이 신규로 등록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 이외에도 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일을 잘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뿐 아니라 일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욕은 인센티브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강제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야 생산성도 높아지고 창조성이 발휘된다. 기업은 그런 사람들이 많을 때 경쟁력을 가진다. 국가 전체로 보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경제학이 강조하는 경제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사람들이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돈을 주니까 일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돈을 더 많이 주면 더 열심히 일한다. 보통은 그렇다.

하지만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경제적 인센티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인센티브나 사회적 인센티브 또한 중요한 동기부여 기술이다. 도덕적 인센티브는 “일 안 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개인의 도덕적 양심과 관련이 있으며, 사회적 인센티브는 “일 안 하는 것이 창피하다.”고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물리적 강제력나 공포심을 자극하여 사람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도 일종의 인센티브다. 독재국가나 전제주의 국가가 주로 사용하던 방법이다. 그런 방법으로도 사람을 일하게 만들수는 있지만, 높은 생산성을 얻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 모두 알고 있다. 오늘날 국가나 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기술은 경제적 인센티브다. 경제적 인센티브는 어떤 방법보다 즉각적이고 효과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부작용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불완전한 기술이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는 그들의 저서 <괴짜경제학>에서 헌혈을 늘리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헌혈하는 사람이 줄어들 수 있음을 지적한다. 도덕적 인센티브를 경제적 인센티브로 대체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이다. 헌혈과 같은 이타적인 행위로 인한 만족감이 몇 푼의 현금보다 더 큰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자신의 재산 85%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사건으로 인한 것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또 기부하는 일은 멋진 것이다”라는 사회적 분위기에는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사회적 인센티브를 만들어 낸다. 역으로 ‘부자는 다 도적놈이다’라는 사회적 정서는 경제성장에 방해가 될 수 밖에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의 정의뿐 아니라 경제의 성장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기술인 셈이다.

엘빈 토플러는 그의 책 <부의 미래>에서 욕망을 선동하고 부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는 없지만 가난의 미덕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머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일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의욕이 있어야 국가가 성장한다는 말이다.


사회적 기술은 각종 인센티브를 조합하여 만들어 진다. 이제는 사회적 기술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식이 되었지만, 사유재산권이나 특허의 권리 같은 것도 이 세상에 원래 존재하지 않던 인류의 발명품이며, 사람들에게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사회적 기술이다. 사유재산권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 발전을 만들어 낸다. 더그러스 노스는 농업혁명이후 농경사회의 발전도 결국 사적 소유제가 만든 발명품이라 단언한다.

그렇다고 인간의 탐욕이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부를 침해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다른 사람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감퇴 시켜 오히려 경제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내가 땀 흘려 만들어 놓은 것을 누군가 몰래 가져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누구라도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적 기술은 사람들이 일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쉽게 남의 돈을 빼앗거나 엉터리 제품을 팔 수 있다면 시장이 성장할 수 없다. 지나치게 불공평한 분배는 사람들이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고, 많은 범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상위욕구를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줄 서고 편을 가르는 처세술에 더 신경을 쓴다. 사회적 욕구에 집착한다는 말이다. 이마저 제한을 당하면 최저 단계인 ‘생존욕구’에 매달린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뭉치고 때론 과도한 임금을 요구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는 일이다.

국가에 있어 이런 사회적 기술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물리적 기술이 부족하여 경쟁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위기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자원을 잘못 사용하면 국가 전체가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시작된 2008년의 경제위기 역시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람에 대한 동기부여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에서의 자유는 사유재산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자유는 인간에게 분업, 전문화, 협업을 통해 경쟁력을 가지도록 하였으며, 이런 인간의 동기를 촉진시키기 위해 주식회사와 같은 사회적 기술이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분업은 이제 매우 당연시 하지만, 생산력을 증강시킨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술이다. 분업은 개인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사회전체의 생산성을 높여준다. 당연히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장이 없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 이상 만들어 낼 이유가 없게 된다.

<부의 이동>의 그렉 클라이즈데일은 중국이 유럽보다 먼저 부강해 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를 분업에서 찾는다. 중국의 도자기산업이 발달한 것은 다른 나라보다 먼저 분업화된 대량생산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도자기 공방마다 각기 다른 시장에 맞게 독특한 제품을 생산했는데,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굽는 일, 마지막 손질을 하는 일 등이 모두 분업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도 증기기관이 아니라 분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분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도 당시 영국에 살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다. 그는 <국부론(國富論)>에서 바늘공장을 예를 들어 분업(分業)의 효율성에 대해 설명했다.

“솜씨가 서툰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에 기껏해야 바늘 한 개를 만드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바늘공장에서는 노동자 열 명이 같은 시간에 48,000여개의 바늘을 만든다. 한 사람당 4,800개의 바늘을 만드는 셈이다. 이 공장에서는 바늘 만드는 일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노동자들이 각각 한 단계씩 맡아서 일한다. 첫 번째 사람은 철사를 가져오고 두 번째 사람은 철사를 똑바로 펴고, 세 번째 사람은 철사를 자르고, 네 번째 사람은 철사 끝을 뾰족하게 하고, 다섯 번째 사람은 바늘귀를 만들 수 있도록 윗부분을 뭉툭하게 간다.”

단순히 작업을 분리하고 전문화함으로써 노동자 한 사람의 생산력이 4,800배가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기계화된 작업이 도입되면 생산은 혁명적으로 늘어 나게 되었다. 그래서 산업혁명이다.


인간은 기업이나 국가에서나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 자원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활용할것이냐가 바로 사회적 기술이다. 경제학은 인간이 동기부여 즉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영국 산업혁명의 또 하나의 주역은 사유권의 인정이었다. 물론 시민들의 피로 얻은 자유였다. 네덜란드가 상인을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100년 동안 영국은 시민의 자유를 위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기회가 오자 개인의 자유는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다.

앞에서 강조하였듯이 역사가 내놓는 경제 발전의 기본적 조건은 역시 자유다. 그 자유로부터 경쟁이 탄생한다.

국가의 통제가 줄어들자 상인 계층이 성장하고 기업이 나타났다. 이런 변화는 일찍이 12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 문명은 경제 규모나 기술 수준에서 중국 문명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 상황은 진취적인 상인들과 기술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했다. 중국이나 이슬람 문명권과는 달리, 로마 제국 이후의 유럽은 작은 나라로 잘게 나뉘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 왕권이 그리 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재능과 아이디어 그리고 자본을 놓고,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런 경쟁은 상인들이나 기술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공간을 제공했으며 마침내 자율적인 경제환경의 출현을 도왔다. 중국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100여개국이 서로 경쟁적으로 인재를 받아들임으로써, 학문이 발전하고 상업도시가 번영한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적 기술에 있어 자유와 함께 중요한 요소는 경쟁이다. 아니 자유가 충분히 주어졌다면 경쟁은 불가피하다. 뒤쳐저 있는 사람들은 앞서있는 사람을 앞지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경쟁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과 문화들은 경쟁을 통해서 선택되고 발전한다. 경쟁을 통해서 보다 나은 것들이 퍼지는 현상을 우리는 진화라 부른다. 모든 생명체들과 사회 조직들은 진화한다. 경제도 물론 진화한다.

유럽의 역사가 가리키는 것처럼, 상당한 자율성을 지닌 경제시스템에서는 갖가지 실험이 이루어진다. 실험의 대상들은 새로운 상품들과 그것들을 만드는 새로운 기술 들만이 아니다. 어떤 뜻에서 훨씬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제 조직에 대한 실험이었고, 그런 실험을 통해서 새로운 기업 형태들이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업과 협업의 필요성은 기업이라는 형태의 사회적 기술로 발전해 나갔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사업을 벌인 일은 많다. 유럽의 길드와 상인조합 그리고 한국에서 상단이라고 부른 것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런 조직의 효율성을 알아 채린 선각자들은 회사라는 형태의 더 큰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술로 발전시키고 그 회사에 인격을 부여했다. 그 인격체를 법인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1555년 영국에서의 만들어 졌다. 여왕 메리 1세로부터 러시아무역독점의 특허권을 획득한 후 6천 파운드의 자본금으로 3척의 상선과 기타 상품을 구입하여 설립된 ‘머스코비 회사(Muscovy Company)’가 그것이다. ‘러시아 회사(Russia Company)’라고 불린 머스코비에게는 법인의 지위가 부여되고 주식 발행 및 거래가 허용되었다. 이 시대 이전의 대부분의 무역상들도 여러명의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모으긴 했지만 ‘주식’을 발행하고 법인의 성격을 지닌 것은 머스코비 회사가 최초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도 주식회사라는 사회적 기술을 이용하여 1602년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주식을 발행하였고 상인들과 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그러자 일반 시민들까지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하였으며, 세계최초의 주식거래소가 개장되었다.
신대륙으로부터 얻어질 미래의 부에 대한 기대로 투자자가 모였고, 투자자들은 주가의 상승으로 자본이익이라는 과실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자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자금이 네덜란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자금이 거래되기 시작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현대적인 금융시스템을 갖춘 암스테르담 은행이 나타난다. 자본주의 경제의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좋은 기술은 누군가에 의해 모방되고 다시 확산되면서 더 발전한다. 사회적 기술은 물리적 기술보다 모방하는 일이 분명히 더 쉬워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 기술은 기계보다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움직여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인간은 자신이 하던 습관을 단기간에 고쳐 내기가 힘들다. 경제적 성과는 기술수준이 아니라 제도수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 더글러스 노스는 한 사회가 경쟁력이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은 기술수준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강조한다. 사회의 제도라는 것이 결국은 사회적 기술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제도는 그 나라가 오랫동안 쌓아온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거나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