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발전이 경제성장이다. 그렇다면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학자들 마다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시장에 꼭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자유와 신뢰다. 그리고 거래비용이 적어질수록 시장은 발전한다.
자유
베트남 속담에 “시장을 가로막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가로 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시장이 존재하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다. 자유란 당연히 사유재산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사유재산권을 포함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이기적인 인간은 자신의 그런 권리를 더욱 안정적이고 더 키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낸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발휘해 분업을 추구하고 협업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대량생산을 위해 자본과 기술을 축적한다.
시장에서의 자유는 사유재산권을 기반으로 시작된다. 자기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면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 인간은 ‘내 것’이라는 이유로 열심히 일하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 베트남의 거의 모든 트럭이 멈춰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곳에 있던 움직이던 트럭은 옛 소련에게 지원받은 것들이었으며 오래된다가 부품도 구할 수 없던 탓이었다. 국가 운송체계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자 베트남 정부는 운전기사들에게 트럭의 소유권을 주었다. 그러자 모든 트럭들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럭이 모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되자 운전기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트럭을 수리해 낸 것이다.
소유권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가장 현실적인 사례는 사회주의 집단 농업 생산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 소련의 공산정권 당시 모든 농지는 국경기업 소유였지만, 예외적으로 각 가정의 앞의 텃밭은 사유지로 인정해 주었다. 전체 경작면적의 1%에 해당하는 땅이다. 그런에 이 1%의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전체 생산량의 1/4 정도였다고 한다. 1970년후반에 들어 중국의 농촌은 집단 생산체제에서 개인생산체제로 바뀐다. 이렇게 농민 개개인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생기자 식량생산은 급증했다. 어떤 정부의 빈곤 추방 프로그램도 이 만큼 효율적일 수는 없다.
위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시장의 탄생>의 저자, 존 맥밀런은 더 나아가 IBM이 마이크로 소프트를 매입했다면 어떻게 됬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MS가 창업하던 1974년 IBM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MS를 매입하고 한 부서로 편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 MS처럼 거대한 기업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유재산권이란 법에 의한 경제적 자유의 보장을 뜻한다. 재산권은 부동산, 주식 및 채권과 같은 물리적 대상이외에 특허 그리고 저작권과 같은 비물질적 자산들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 것을 만들려는 욕심 때문에 일하고 경쟁을 불사한다. 그래서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특허제도가 천재성이라는 불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끼얹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사유권에 대한 자유는 경쟁을 유발한다. 경쟁은 한 사회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한다. 음식을 맛있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은 조만간 문을 닫게 되고, 음식이 맛있는 식당은 손님으로 붐빌 것이다. 음식의 재료는 결국 능숙한 음식솜씨가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사고파는 사람들의 경쟁으로 가격이라는 정보가 나타난다. 경쟁으로 적정가격이 형성되고 자원은 최고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에게 옮겨지고 최고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게 된다. 경쟁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된다. 거기서 중요한 시장에 관한 정보 즉 가격이 만들어 진다. 이처럼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자원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며 경제는 성장한다. 아니 진화한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경쟁이 “발견 절차”임을 지적했다. 발견의 절차라는 것이 바로 진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신뢰
그렇다고 해서 시장이 혼자 언제나 잘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장에 맡기면 알아서 잘 할 것이라는 말은 반만 정답이다.
규제를 무조건 반 시장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유시장경쟁이라는 것이 자유방임이 되어서는 시장이 발전할리 만무하다. 단 하나의 이론만으로도 우리는 신뢰가 자유시장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다름아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론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금속화폐가 통용되던 시대에 나온 말이다. 순수 금화와 다른 것과 적당히 섞어만든 금화가 시장에서 같은 가치를 가지자, 사람들은 순수 금화를 집에다 보관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시장에 통용되는 금화는 좋지 않은 돈이 주종을 이루고 세상에는 나쁜 돈만 돌아다니게 된다. 말 그대로,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낸다.”는 법칙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법칙이 적용되던 시장은 수없이 많다. <시장의 탄생>의 저자 존 맥밀런은 인도의 우유시장을 예로 든다. 한 때 우유 도매상들이 수익을 늘리기 위해 우유에 물을 타기 시작했다. 소비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너도 나도 이익을 늘리기 위해 같은 방법을 사용하자, 가격이 내려간다. 순수한 우유를 공급하는 판매자는 수익이 줄고 떨어지는 우유값으로 사업을 영휘할 수 없게 되어 시장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우유시장이 붕괴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은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 측정기기를 배포하고, 보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야 시장이 회복되었다.
규제가 불완전하면 여전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늘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서 제대로 자신을 알려보지도 못하고 유사한 엉터리 제품에 의해 시장에서 몰려나고 마는 현상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에 신뢰가 존재하지 않으면 시장은 쇠퇴하고 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의 파생금융상품은 신뢰를 잃었다. 이런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이로인해 미국 자체의 브랜드 가치가 신뢰를 잃었다.
1972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Kenneth J. Arrow)는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상거래는 신뢰라는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세계에서 보는 경제적 후진성의 대부분은 결국 상호신뢰의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부자들이 자국에서 판매되는 물건을 못 믿고 일본에 가서 명품쇼핑을 한다면 중국의 명품시장은 발전할 수 없다. 그런 의미라면 미국의 금융상품은 미국의 후진성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신뢰의 결핍은 구매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상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가격으로 판매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 비용이 결국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에게 세금과도 같은 거래비용이 된다.
정치학자이며 일본계 미국인인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세계의 각국을 고신뢰사회와 저신뢰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중국과 함께 저신뢰사회다. 그리고 고신뢰사회로 미국, 일본, 독일 등 경제 강국을 집어낸다. 한마디로 고신뢰사회라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나타난 결과를 기반으로 더구나 신뢰라는 하나의 변수로 세계를 공식화하려는 논리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의 저서 <트러스트>에 나오는 표현처럼 “사회에서 불신이 팽배하게 되면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부담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세금을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할 수 없다면, 거래는 추춤할 수 밖에 없다. 신뢰를 만들어 내는 일 역시 정부와 시장참여자가 함께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시장설계라고 할 수 있다.
거래비용
거래비용은 실물자산의 가치의 일부를 고갈시키며 거래 당사자 양방의 이익을 감소시킨다. 거래비용은 거래를 하기 위한 사전적인 비용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 정보비용도 비용이다. 거래세와 자리세 같은 것도 거래비용이다. 이베이나 옥션은 인터넷을 이용해 판매자와 구매자를 찾는 정보비용이라는 거래비용을 줄여 줌으로써 성공한 사업모델이다.
거래비용이 줄면 시장이 발달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전이 오늘날처럼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으며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다. 중국은 실크로드라는 동서양이 통하는 길을 만들었으며, 로마는 로마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바닷길을 열어 신세계의 엄청난 부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는 우리가 기억할 만한 시장과 그를 뒷받침할만한 제도가 없었다. 결국 시장의 부재로 그들이 만든 부는 점차 주변 국가들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네덜란드는 항해술과 선박건조 기술을 통해 운반비용을 줄임으로서 유럽의 무역중심이 되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고속도로와 철도 그리고 해운기술에 의한 시장의 확대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화와 팩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통신수단은 장거리 거래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거래비용의 축소는 시장을 발전시키고 또 확장시킨다. 거래가 늘어나고 거래물품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이용해 정보수집 비용이 줄어들자 과거에는 도저히 거래될 수 없었던 잡동사니조차 거래되고 있다. 다락방에 버려져 있던 오래된 레코드판과 책 그리고 장난감이 거래된다.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이다 보면 그렇게 가격이 점점 더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기 시작한다.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완전한 시장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런 시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거래비용 역시 자유와 경쟁에 의해 놀랄 만큼 줄어들 수 있다. 경쟁은 구매자로 하여금 가장 효율적인 판매자에게 향하도록 만든다. 여러 단계를 걸쳐 최종소비자에게 공급되던 물품은 점차 좀 더 부지런한 상인들에 의해 더 싼 가격으로 공급될 것이다. 그들이 거래비용을 낮추려고 노력한 덕분에 소비자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받고 그 대가로 부지런한 상인들은 부자가 된다.
시장은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장소가 아니다. 시장은 삶의 대학이며 실험장이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곳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탄생하고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시장이 발달해야 하고, 시장이 성장하려면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