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진화론은 자연이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에 의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강한자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적자란 환경에 적합한 사람이다. 하지만 진화의 본질은 살아남는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는 특성에 있다. 유리한 특성을 ‘가진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특성 즉 ‘형질(形質)’이 살아남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것들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두 유리한 특성을 포함하고 있는 강한 자들이다.
복잡계 경제학의 개관서라고 할 수 있는 <부의 기원>의 저자 에릭 바인하커는 우리 경제도 끊임없는 진화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몇 개의 단순한 도구만 사용하는 수렵 채취 경제에서 100억 개나 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이 생산, 유통되는 오늘날의 경제로 발전한 과정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진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아메바와 같은 단일 세포 동물에서부터 진화된 것이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모든 생물이 종적 번식과 생존을 위하여 자신에게 보다 유리한 특성을 더 많이 선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환경에 맞는 기술이나 방법이 우연이라도 나타나면 그 방법을 더 학습하고 발전시켜왔다. 만약 인간을 제외한 생물체들이 스스로 환경에 적합한 특성을 선택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자연이 그런 유리한 형질을 선택했다는 식으로 이해해도 좋다. 여하튼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환경에 유리한 특성이 강화되고 복제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더 넓게 그리고 더 많이 퍼져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체 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유리한 특성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차별화다. 다른 생명체에서 차별화는 수동적 변이에 의해 나타난다. 남보다 우월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기업 그리고 국가는 주도적으로 얻어낸 차별화를 통해 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그런 ‘홀로 성공’이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들의 차별화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주변의 사람들이나 국가도 따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서간 국가의 창조물을 그대로 복사하거나 그 중 몇 가지 특성을 복제하고 자신에 맞도록 변형시켜 또 다른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 지구촌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네덜란드, 영국, 미국, 일본 모두 그렇게 부자나라가 되었다.
무력이나 착취가 아닌 상업에 의해 부자가 된 첫번째 나라는 1600년대의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시민들은 귀족들에게서 도시 자치권을 사들였고, 상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그야말로 상인들에 의한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공동 출자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당시 전세계 무역의 절반을 독점했고, 세계 최초의 주식거래소를 설립해 자본시장을 탄생시켰다.
이 나라를 모방하기 시작한 것은 영국이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이후 제임스 2세의 사위였던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이 영국의 왕으로 등극하였다. 이 윌리엄을 따라 군사를 포함해 3만여 명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터전을 잡았다. 이 들 중에는 네덜란드 지식인들과 금융 자본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은 그 후 은행을 설립하고 암스테르담 은행의 운영 방식을 모방하는 등 네덜란드의 경제방식을 도입하였다.
영국의 초기 산업혁명을 이끈 섬유산업은 이탈리아를 모방한 것이다. 중국의 비단 제조법이 유럽으로 전해져 맨 처음 발달하기 시작한 곳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다. 영국의 토머스 롬브와 존 롬브는 당시 비단으로 명성을 떨치던 이탈리아의 볼로냐시의 한 공장 평면도를 훔쳐냈다. 오늘날의 산업스파인 셈이다. 그들은 1717년 영국 더비에 비단 공장을 세우고 양질의 비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은 방적기를 발명하였고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미국 역시 영국의 경제제도나 기술을 모방하면서 성장한 나라다. 미국 인구의 기반을 이룬 사람들이 유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으니 스파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기술만 있다면 미국은 새로운 성장을 보장해 주었을 테니 말이다.
영국의 새뮤얼 슬레이터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수력방직기를 발명한 아크라이트의 동업자였던 면직 공장주 밑에서 생산기술에서 경영까지 전과정을 익혔다. 어느 날 ‘미국에서 직조기를 작동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라는 유인물을 보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간다. 당시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설비는 물론 직공의 해외여행까지 금지되던 시절이다.
그는 미국인 목수와 기계공을 모아 필요한 기계들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 도착한지 1 년여 만인 1790년 12월 20일, 로드아일랜드주의 방적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슬레이터의 공장은 지금까지 ‘미국 산업화의 발상지’로 보존되고 있다. 그의 성공은 자본가들을 고무시켰고 신생 미국은 공업국가로 올라섰다.
일본의 성장은 그야말로 모방을 통한 성장이었다.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이었던 페리 제독이 미국 대통령의 국서를 가지고 일본의 개항을 요구하자, 일본은 아예 미국,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 각국과 1858년 통상조약을 체결해버리고 만다. 그 후 1868년 시작된 메이지 정부는 대규모의 사절단을 서양에 보내게 된다. 오늘날 흔히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불리우는 이 사절단은 공식 수행원 18명, 유학생이 43명이었고, 기타 인원까지 포함하여 그 총인원은 107명에 이르렀다. 1871 년 겨울 요코하마를 떠나 미국을 거쳐 약 1년 10개월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동안,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러시아, 덴마크등 약 12개국을 여행하며 새로운 기술을 만나게 된다.
그 후 많은 유학생과 사절단이 돌아와 정치적으로는 영국을 모방한 입헌 군주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문화적으로는 근대화를 표방하였고, 각종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오죽하면 공학은 스코틀랜드, 해군은 영국, 육군은 프랑스, 의학은 독일, 농학은 영국, 미술은 이탈리아를 흉내 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많은 기술이나 디자인을 시험해보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그 중 좋은 것은 더 많이 채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채택된 기술, 채택된 사업은 살아남고 성공하면 그런 기술은 복제된다. 시장의 경쟁은 주체가 개인이던 기업이던 국가이던 창의적인 차별화를 가속화 시킨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도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듯 보이다가도 실패를 맛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논의하겠지만, 소련의 계획경제도 초기에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의 인터넷과 IT 기술은 경영효율을 올리고 생산성을 높여 ‘신경제’라고 불리었다. 세계 각국은 이 성공을 모방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성장을 이끌던 또 하나의 축 금융시스템은 그 한계를 드러냈다. 한동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이며, 그 금융을 흉내내는 각국은 더 신중해야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경제는 미국의 주도하에 성장하였다. 그리고 일본과 유럽은 물론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미국의 경제를 흉내내기 시작했으며, 미국 기업을 모방하였다. 실제로 1960년대의 유럽은 얼마전까지 그들을 모방하던 미국의 제도와 기술을 모방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일본도 유럽도 그리고 미국도 모방하거나 카피할만한 성공적이며 앞서가는 모델이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일본의 성장이 주춤해진 이유는 그들이 모방할 또는 벤치마킹할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제 남을 따라해서 성공적인 차별화를 이루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혁신 없이는 다른 기업이나 국가와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의 시대로 진입 했다고 보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