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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마을, 가난한 마을

프로로그: 80억이 사는 마을의 경제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에 맞서 자신의 능력 일부분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런 사람들을 세계로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소중하게 품고 있는 야망이다. ~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아직도 이 세상에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물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지구촌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는 약 1만 년쯤에 수렵, 채취 경제로부터 정착, 농경사회로 들어갔다. 1993년 노벨경제학 수상자 더글러스 노스Douglass C. North는 이 농업혁명을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로 보고, 제1차 경제혁명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땅이라는 것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땅에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농업혁명을 통한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지구촌에 물질적 풍요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산업혁명이다. 더글러스 노스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제2차 경제혁명이라고 불렀다. 인류는 이 두 차례의 경제혁명으로 조금 나은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더글러스 노스의 경제혁명을 ‘물결’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제3의 물결인 정보화 혁명을 추가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022년 지구촌의 사람들이 한 해에 벌어들인 돈은 대략 95조 달러(95 trillion U.S. dollars)에 이르렀다. 이를 세계 총인구로 나누면 한 사람이 그 해의 생산 활동에 참여해 만들어낸 가치를 얻을 수 있고 그 수치가 바로 1인당 한 해 수입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2022년 지구촌 한 사람이 벌어들인 돈은 1만 2천달러를 조금 윗 도는 정도다. 그나마도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생산의 길이 열린 후 세계경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기에 가능한 수치다.


실제로 버클리 대학의 브래드퍼드 드롱Bradford DeLong에 의하면 1500년까지 세계경제는 거의 성장하지 못했으며, 175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인당 수입이 190달러에 도달하게 된다. KDI의 유윤하는 그의 논문 〈제도와 경제성장〉에서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고 다니던 사자의 1800년대 삶이 2000년 전에 비해 그리 개선되지 않은 것처럼, 인간이 누리던 생활수준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런 인류가 1800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고 또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한 마디로 정리해야 한다면 기술의 발전과 분업이라는 생산방법의 혁신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혁신도 시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다 팔 곳이 없다면 누가 자신이 소비할 물건보다 더 많이 만들었겠는가? 시장이 커지면서 분업이 더욱 힘을 발휘하였다.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는 재료를 세계인구의 2퍼센트 미만의 인력이 공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인구증가가 언제나 식량공급을 앞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맬서스Thomas Malthus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다.


국제연합인구기금UNFPA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하면, 세계 전체로 봤을 때 2007년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비율은 40퍼센트이며, 제조업이 21퍼센트, 서비스가 39퍼센트를 자치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의 비율은 농수산업, 제조업, 서비스 각각 4퍼센트, 32퍼센트, 64퍼센트다. 실제로 선진국으로 갈수록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근로자의 2퍼센트 정도이며, 우리나라도 7.4퍼센트에 불과하다. 세계의 식량창고라는 미국에서도 농수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4퍼센트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해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약 2명 정도가 생산해 내고 있는 셈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으며,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직업이 생겨나고 있다. 파티플래너, 인형 패션 디자이너, 웃음치료사, 기상컨설턴트, 와인전문가(Sommelier)와 같은 직업이 각광받으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고 있으며 미래의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이다.

요즘 들어 국가나 개인 모두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일자리다. 일자리가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한 공허한 목소리다. 사회의 안정장치 없이는, 누구도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세계인구를 다시 100명의 마을로 축소해 보면, 이 마을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73명이지만 실제로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은 50명 정도다. 나머지 23명은 공부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아파 누워 있거나 쉬고 있다. 세계 인구의 50퍼센트가 일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 50명 중에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47명이며, 3명은 실업자다. 3명의 실업자를 우리에게 익숙한 실업율로 표현하면 6퍼센트가 된다. 물론 경제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수치다.

이 마을에는 3개의 기업이 있고, 마을 사람 40명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기업을 가지고 있는 3명을 기업가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월급쟁이라고 부른다. 나머지 4명은 혼자서 일하거나 가족과 일하는, 말하자면 자영업자다.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40명 중 그 반이 안 되는 사람만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는 비정규직이거나 한시적 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사는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미국, 일본, 대만, 호주, 독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9개 국가의 2007년 평균을 이용해 재구성한 것이다. 보통 선진국의 실업률은 4에서 12퍼센트 사이지만, 가난한 나라의 경우 약 30 퍼센트에 달하는 사람이 실업자이거나 자신이 일하고 싶은 시간만큼 충분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촌 한 사람의 한 해 평균 수입이 1만 달러라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1만 달러정도를 벌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에 비해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평균을 올려놓았을 뿐이다. 미국의 경우 대기업의 CEO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봉차이가 367배가 넘는다는 보고가 있다. 국가간의 소득차이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2009년 오늘 부자나라의 사람들은 연간 4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데 반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의 연평균 소득은 부자나라의 백분의 일인 4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이 일년에 버는 돈의 53퍼센트는 노동의 대가이며 47퍼센트는 자본에 의한 수익이다. 자본소득은 채권이나 주식 그리고 부동산 임대를 통해 얻은 수익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본소득이 충분한 사람은 노동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반대로 누군가는 남의 돈을 빌려 오늘 소비하거나 미래의 소득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그 대가로 자신의 미래소득의 일부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노동자와 자본가로 이분화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잘 사는 나라의 노동자는 노동자이면서 자본가다. 그들은 노동소득의 일부를 저축을 하고 자본소득으로 재산을 늘려가고 있다.

소위 임금근로자라고 불리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선진국으로 갈수록 많다. 영국과 미국은 90퍼센트에 가까운 고용자가 기업이라는 조직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8퍼센트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 수의 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이거나 시간제 형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월한 사회라는 말은 아니다. 얼마나 안정적이며 다양성이 존재하느냐가 관건이다. 직업의 다양성은 더 많은 종류의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고, 또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부의 분배는 소득의 분배보다 더 심각하다. 전 세계적으로는 2퍼센트의 부자가 전 세계 재산의 5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국가 간의 부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경제학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왜 어떤 나라는 부자가 되었고, 또 다른 나라는 아직도 가난한가?”라는 질문은 의미 깊고 중요하다. 아직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유윤하는 그의 논문 〈제도와 경제성장〉에서 1800년경만 해도 국가 간 소득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당시에는 가장 부유한 국가와 가장 가나한 국가 사이의 소득격차가 2~3배를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모든 나라가 한결같이 가난했다는 말이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한 국가 안에서의 부의 분배도 불평등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상위 1퍼센트의 부자가 미국 재산의 33퍼센트 그리고 상위 10퍼센트가 약 70퍼센트의 부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통계적으로 봐서는 좀 나은 편이다. 상위 1퍼센트가 약 14퍼센트의 부를 그리고 약 10퍼센트의 부자가 약 43퍼센트 그리고 상위 20퍼센트의 부자가 약 60퍼센트의 부를 독점하고 있다. 지구촌 전체로 보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평균 재산은 약 2만 달러 정도지만, 약 30%의 사람들은 재산이 전혀 없거나 오히려 빚을 지고 있다.

1800년 이후 누군가는 부자가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몇 번의 경제혁명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실 오늘날 국가가 가지는 거시 경제정책의 두 가지 큰 목표는 빵의 크기를 키우는 것과 빵을 나누는 문제다. 그 요인이 무엇이든 현대에 들어 지구촌은 비교적 빵의 크기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빵을 나누는 데 있어서는 자유경쟁 시스템이 아직 미숙한 편이다.

대가 없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인구의 증가와 기술의 발달,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이 커지면서 지구촌의 경제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그런 자유시장경제는 공짜가 아니었다.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경제에만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계획경제를 실행하면 부의 불평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목적으로 부의 분배에서 평등 해진다는 수치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권력의 집중은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공산주의에서는 권력의 집중화가 독재자를 만들어냈고, 자연스럽게 부 역시 소수의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그것이 부의 불평등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시장경제라는 더 나은 방법을 택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67억이 사는 마을에 아직 받아들이기 불편할 정도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류가 이룬 경제성장 덕분에 절대 빈곤에서 많은 사람들이 벗어난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더 나은 사회, 더 잘사는 경제를 위한 학습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나마 오늘날 경제가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한 데는 과학자 뿐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한몫을 했다. 그런 경제학자들에게 케인즈의 스승인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에 맞서 자신의 능력 일부분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런 사람들을 세계로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소중하게 품고 있는 야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