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돈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일까? 사실은 누구라도 돈을 만들 수 있다. 친구들이 나를 신뢰한다는 조건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내가 친구에게 써준 차용증서도 돈이 될 수 있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국가도 나의 차용증서와 같은 방법으로 돈을 만들어 낸다. 정부라고 하더라도 임의로 돈을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독립한 국가가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최초로 돈을 발행해야 한다고 하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채권 즉 차용증서를 발행해야 한다.
물론 정부와 중앙은행이 하나의 기관이라면 그냥 돈을 인쇄하기만 하면된다. 하지만 세계 어느나라도 그렇게 단순한 절차를 거쳐 돈을 찍어내지는 않는다. 돈의 가치에 대한 신뢰와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100명이 사는 마을 열방이라는 나라가 100억 달러라는 새로운 돈을 유통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보통 다음의 단계를 거쳐서 돈이 만들어 진다.
먼저 열방의 마을 사람들이 정부가 100억달러를 만들어 내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 다음 정부는 돈을 찍어내는 중앙은행에가서 100억달러의 국채 발행에 대한 이자와 상환 기간 등에 대해 합의를 한다. 합의가 이루어 졌다면, 열방의 정부는 100억달러의 채권을 찍어 중앙은행에 가져다 준다. 중앙은행은 그 대가로 새로운 돈을 찍어 정부의 은행구좌에 입금시킨다.
이렇게 만들어 진 돈을 경제학자들은 본원통화(High Powered Money)라고 부르며, 우리가 이야기하는 현금이다. 이제 열방이라는 마을에 100억달러라는 돈이 만들어 졌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 내는 돈은 정부가 마음대로 돈을 찍어내는 일과는 큰 차이가 있다. 좋은 돈은 신뢰가 있는 돈이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어떻게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돈의 실체는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한 부채가 된다.
또 하나 이렇게 만들어 진 돈이 가지는 또 다른 특징은 계속해서 돈이 늘어나야 화폐시스템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에도 이자가 붙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채를 회수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돈을 걷어 중앙은행의 빚을 갚아버린다고 하자. 모두 다 갚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은 원금뿐이다.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돈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없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와 우리의 자손은 계속해서 생산을 더 해내야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국가가 지속되고 누군가 일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중앙은행에서 돈을 더 빌려서 이자를 갚는 방법 말이다. 세상에 돈이 없으니 그 방법외에는 없다. 즉 현실적으로는 계속해서 돈이 늘어나지 않으면 한 나라의 화폐시스템은 유지될 수 없으며,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수표: 은행이 만들어 내는 돈
정부만 빚을 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개인과 기업도 빚을 이용해 경제활동을 유지한다. 차용증서를 발행하여 돈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정부는 중앙은행으로부터 받은 현금을 바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처음에는 모두 정부가 가지고 있는 일반은행의 구좌에 넣어 놓게 될 것이다.
이제 민간은행은 자신의 금고에 돈이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 돈장사를 하려할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간은행의 허가를 가지고 있으면, 은행소유가 아니라도 은행에 입금되어 있는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예치되어 있는 예금 중 일부는 지불준비금이라는 이름으로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고객이 돈을 찾으러 왔을 때를 대비해서 보관하는 돈이다.
은행의 대출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고 만기가 다르니, 어느 날 갑자기 고객들이 찾아와 예금인출을 요구했을 때 여기에 응할 수 있는 돈은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돈을 찾으러 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셈이다.
여하튼 그런 생각으로 중앙은행이 은행들이 준비해두어야 할 일정금액을 강제적으로 맡아둔다. 이 제도를 ‘지급준비제도’라고 한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은행들의 예금금액에 대해 일정 비율의 돈을 강제적으로 맡아두었다가 필요한 경우 이를 다시 내어 준다는 말이다.
열방의 정부가 정한 법정지불준비율이 10%라고 가정해 보자. 정부가 은행에 100억 달러를 예치해 놓았다면 은행은 그 돈의 10%인 10억 달러는 은행에 남겨놓고 90%는 대출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대출해 준 90억 달러가 모두 은행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대출 당시부터 같은 은행의 구좌로 입금시켜주면 그만이다. 더구나 우리가 큰 돈을 인출하는 경우에는 현금이 아니라, 은행이 발행하는 수표로 발행해 주기도 한다. 그 수표는 은행이 만든 돈이다. 결국 우리가 대출받은 대부분의 진짜 돈은 다시 은행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대출해 준 90억 달러 모두 은행으로 돌아온다면 다시 그 돈의 10%인 9억달러를 은행에 놓고 90%인 81억 달러를 대출해 줄 수 있다. 이 돈이 다시 은행의 예금으로 들어오게 되며 또 다시 그 돈의 10%를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나머지 금액이 대출이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진행된다고 했을 때 은행이 만들 수 있는 돈은 원래의 돈 100억을 합쳐 1000억 달러가 만들어 진다.
이를 일반화하면 ‘1/지불준비율’로 표시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지불준비율이 10%라고 하면 1/0.1인 10배의 돈이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다. 최대로 만들어 질 수 있는 돈은 1,000억달러가 되고, 여기서 중앙은행이 찍어낸 100억달러를 제하면, 은행이 대출을 통해 만들어 내는 돈은 900억 달러가 된다. 만일 지불 준비율이 2%라면, 1/0.02해서 50배의 돈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은행의 신용창출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돈이 늘어나는 정도를 통화의 승수효과라고 부른다. 즉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공급하면 통화는 통화승수만큼 늘어난다는 말이다. 따라서 1/지불준비율은 최대 통화승수가 된다. 그것이 은행이 최대한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출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금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2009년 1월 현재 지불준비율은 약 7%정도이며 한국의 통화승수는 약 26배 수준이다. 따라서 본원통화가 54조라면 은행이 만들어 낸 돈은 1천 350조 정도라는 말이다.
이처럼 정부뿐 아니라, 은행도 우리가 맡긴 돈을 근거로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낸다. 이 돈은 누군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결국 시장에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돈은 빚으로 만들어진 돈이다. 더구나 이 모든 부채에는 크기만 다르지 이자가 붙게 되어있다. 여기서 역시 중요한 것은 대출이 없으면 현금이상의 통화량이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출자가 모두 돈을 갚아버리면 시중에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 밖에 남지 않게 된다.
중앙은행과 민간은행이 창출한 돈은 결국 정부가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만들어 낸 돈과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만들어 낸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돈이 우리의 경제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 돈은 주로 거래에 사용되는 돈이다. 물론 예금이라는 형태로 저축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예금은 결국 필요할 때 꺼내 쓰기 위해 있는 돈이라고 할 수 있다.
돈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이외도 많은 기업이 부채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그 부채도 역시 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