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채권: 기업과 기타 금융기관이 만들어 내는 돈
정부와 은행만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기업과 투자은행, 증권회사들도 수 많은 종류의 돈을 쏟아내고 있다. 만약 세상에 오늘 내가 절약하거나 벌어놓은 재산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세상은 더 잘 나누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로 경제성장이 어려워진다. 지구촌 사람들 모두 딱 오늘 먹고 살만큼만 일 할것이기 때문이다.
돈은 오늘의 생산가치의 일부를 미래를 위해 저장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저축은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임으로 오히려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일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돈을 저장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아직은 돈을 쓰려는 사람이 더 많기에 사용에 대한 대가가 더 크고, 결과적으로 돈의 사용자가 이자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까지 지구촌에는 다른 사람의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저축하려는 사람보다 많다. 단순히 미래에 예상되는 소득을 오늘 미리 소비하려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필요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기업가라고 부른다.
시장경제 초기에 개인은 자신이 만든 물건 가운데 남은 것을 자신에게 없는 물건과 교환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상거래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면서 분업화가 지속되어 한 가지 물건만 생산해 내다파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데 생산과 판매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생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설비와 원자재를 먼저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돈이 필요한 기업가들은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 전체 사회에 돈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화폐를 발행하기도 한다. 그들이 발행하는 돈을 우리는 주식과 채권이라고 부른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부채이며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주식이며 채권이다. 이런 증권도 일종의 돈이다. 기업의 어음을 생각해 보면 된다. 한 기업이 발행한 어음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던 시절이 있었다. 어음이 돈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돈이라고 해서 모두 같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유동성과 불확실성에서 차이가 난다.
유동성이란 얼마나 쉽게 다른 자산으로 교환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만원의 현금을 가지고 시장에 나가면 언제든지 추가 비용없이 원하는 물건을 만원어치 구입할 수 있다. 반면에 상장되어 있는 회사의 채권을 가지고 다른 재산이나 제품을 구입하려면, 증권회사를 방문하거나 은행에 담보를 맡기고 돈을 빌려야 한다. 모두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유동성이 가장 높은 것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현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현금을 자기집 금고에 넣고 있지는 않다. 보통은 은행에 예금해 놓고 필요할 때 마다 인출하여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은행에 넣었다가 쉽게 쓸 수 있는 돈을 합쳐 협의의 통화(Money)라는 의미로 M1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유동성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정기예금, 적금이나 펀드처럼 재산의 증식을 위해 금융기관에 저축해 놓은 돈들도 원한다면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금융상품들도 만기에 받을 수 있는 이자를 포기하면 언제든지 현금으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돈과 위의 유동성이 더 높은 M1을 합치면 M2가 된다. 우리가 통화량 이라고 하면 보통 이 M2를 의미하고 있다. 이런 돈이 1400조원 넘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증권화 된 부채(Security Debt) 등을 합쳐 광의 유동성 지표라는 의미로 L(Liquidity Aggregates)이라고 부른다. 증권화된 부채에는 국가가 발행한 국채 같은 것도 포함되지만, 기업이나 다양한 금융기관이 발행한 채권과 유동성 금융상품 등이 대부분이다. 유동성이 떨어지고 불확실성이 늘어났지만, 여기까지는 실물경제에 직접 도움이 되는 돈들이다.
파생상품: 실물과 분리된 돈
사람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부채를 기반으로 새로운 부채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유동성뿐 아니라 안전성이 떨어지는 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파생금융상품이다. 파생금융상품(Derivative securities)은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만들어진 증권을 가리킨다. 우리가 간혹 접하는 선물, 옵션, 스왑 등도 파생금융상품이다.
이런 파생상품도 경제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들어 위험을 회피하기위해 필요하다. 문제는 누군가 위험을 회피하고 싶다면, 그 위험을 택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주요기능은 기초 상품을 변형하거나 합성하여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는 경우다. 이 역시 경제에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규모가 너무 커서 개인이 부동산에 투자하기 어려운 경우, 부동산개발에 투자한 주식이나 부동산과 관련한 채권을 잘게 짤라 소규모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시장에 직접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된 상품들도 이와 유사한 것이다. 장기주택담보대출인 모기지론(mortgage loan)를 바탕으로 모기지담보부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 진다. 이 상품도 신용화폐다. 주택을 사려는 사람이 충분한 돈이 없을 경우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이런 금융시스템은 건설업자는 집을 팔 수 있고, 자금이 부족한 구매자는 집을 구입할 수 있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다. 물론 금융회사는 집을 담보로 잡아둔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은행과 나와의 채권 문제다. 그런데 금융상품의 발달은 이 채권을 그냥 나두지 않는다. 이 채권을 기초상품으로 다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MBS와 CDO다. 부채가 또 다른 신용화폐 즉 돈을 만들어 낸 셈이 되었다.
문제는 신용화폐가 그 근원인 상품과 서비스 거래에서 멀어질수록 악성 거품으로 만들어 지기 쉽다는 점이다. 실물경제로부터 멀어지면서 ‘돈 놓고 돈 먹기’ 현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그런 거품이 붕괴하게 되면 그 증권 다름아닌 부채가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이 부채가 다름아닌 돈이었다는 점을 기억해 보자.
부채가 없어진다는 말은 결국 돈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을 견인한 것이 바로 이 돈이었다. 누군가 돈을 갑지 않겠다고 하면 신용이 수축하게 되어 있으며, 돈이 수축하고 증발해 버리고 만다.
위의 표는 스위스에 위치한 국제결제은행의 통계를 이용해 2006년 런던의 인디펜던트 스트레티지(www.instrategy.com)사가 만든 보고서에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통화체제(New Monetarism)’라고 이름지은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각국의 정부가 발행한 돈은 지구촌 전체를 돌아다니고 있는 돈의 1%에 불과하며 은행이 만든 돈은 11% 그리고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해 만들어 낸 돈은 13%다. 돈의 나머지 75%는 파생금융상품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실물경제와 관련 있는 돈은 증권화된 부채까지다. 피라미드에서 맨 위를 차지하고 있는 파생금융상품은 실물경제와 상관없는 돈이다. 세계총생산량의 800%가 넘는 이런 돈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