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이 영국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와트의 증기기관은 처음에 탄광에서 물을 퍼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 증기기관을 방적기와 방직기에 도입한 사람은 제임스 와트의 동업자이자 사업가인 볼튼이었다. 코카콜라의 창업자 아서 캔들러는 팸프턴이라는 약사가 만든 강장제를 만드는 권리를 사들여 코카콜라라는 세계 최고가치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 기업을 만들게 한 PC운영체제인 DOS를 만든 사람은 빌 게이츠가 아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대형 컴퓨터의 운영시스템을 모방해 개인용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도스시스템을 사업화했다. 자신의 회사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닌 시애틀의 작은 회사의 Q-dos라는 프로그램 소스를 구입하여 IBM에 납품하면서 기업을 성장시킨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윈도우 체제도 1984년 애플이 먼저 출시한 상품이다. 애플컴퓨터가 그래픽 모드의 화면을 만들어 내자, 빌 게이츠는 다시 이를 모방해 윈도시스템을 내놓게 된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제품은 다른 기업의 제품을 모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시장을 읽을 줄 알았고 사화업화는 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사업화 기술이란 한마디로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통합하여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있다. 이 사업화 기술도 진화한다. 경쟁이 있는 곳에 진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방 그 자체가 중요한 사업화 기술이 된다. 새로 만들어진 사업계획에는 자원이 투입되어 그 생존여부를 시험 받게 된다. 이 실험에서 성공한 사업화 기술은 다른 기업과 언론 그리고 학자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수많은 모방자를 양산하면서 확산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따라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의적인 사람이나 기업은 차별화를 시도한다. 여기서 성공한 사업화 기술을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모방한다. 이것이 에릭 바인하커가 정의하는 경제의 진화 메커니즘이다.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되는 것이다.
차별화란 다름 아닌 혁신이다. 혁신을 최초로 이론화한 사람은 경제학자인 슘페터다. 그는 경제성장이란 생산 요소의 새로운 조합을 통한 혁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기업가다. 슘페터는 새로운 제품의 발명 또는 개발,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 새로운 시장의 개척, 새로운 원재료나 부품의 공급처 개발, 새로운 산업에 맞는 조직의 재구성 등의 새로운 결합을 이루는 창조적 파괴자를 기업가라고 하였다.
기술의 혁신 그 자체만으로 사업이 될 수 없다. 슘페터의 이론을 경영학에 도입한 피터 드러커는 그래서 ‘기업가는 변화를 탐구하고 변화에 대응하고 도전하며, 또한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유효적절하게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서, 환경의 변화를 기회로 이용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변화란 시장의 움직임이다. 사회학자 로저스는 좀 더 구체적으로 혁신이란 사회에 보급돼야만 진정한 혁신이라는 주장을 내 놓았다. 시장에서 성공한 혁신만이 진정한 혁신이라는 말이다.
VHS보다 작고 효율적인 소니의 베타, 전기식 냉장고보다 소음도 없고 편리한 가스식 냉장고, 익스플로우보다 성능이 뛰어난 넷스케이프, 이들은 모두 대중에 보급되는 것이 늦어지면서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물리적 기술이나 사회적 기술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진정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이 두 기술을 연결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기업이 좋은 기술이 있고 또 뛰어난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읽어내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조합해 내야하는 과제가 있다.
기술이 좋다는 것은 한 두 과목의 시험을 잘 치룰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현실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현실은 종합시험이기 때문이다. 남이 가지고 있지 않는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업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 그 기술을 이용해 시장이 원하고 또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장의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공장이 원할히 돌아가지는 않느다. 제품이 지속적으로 팔려야 공장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 다시말해 시장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하려면, 환경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환경이란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시장이다. 기업은 물리적 및 사회적 기술을 서로 융합해서 그것을 제품과 서비스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시장에의해 평가받는다.
기업의 사업화 기술이나 사업전략에 해당하는 것이 한 국가의 산업정책이다. 산업정책의 타당성과 또 국가가 개입해야 할 범위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산업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정책은 국가가 특정한 산업이나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부터 시장설계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까지를 포함한다. 그리고 정책의 목적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던 산업정책은 전략적 특성을 가지게 되어 있다. 전략이란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환경과 미래의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는 생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생존과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늘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국가도 이런 과제를 가지고 있다. 아니 하나하나의 기업이 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연구를 국가가 담당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듯하다. 그리고 실제로는 민간과 국가의 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산업정책의 범위는 아직 논쟁이 많이 남아 있는 문제다. 하지만 당위성을 떠나 국가는 산업별 미래의 모습에 대해 예측할 필요가 있다. 이때 기업과 마찬가지로 시장과 소비자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환경과 고객의 변화를 잘 읽어내지 못하는 정책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국가의 경쟁력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모두 합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경쟁력은 하나 하나 기업의 독립적인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포터는 <국가경쟁 우위(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에서 국가의 경쟁력은 그 주체인 기업의 자원외에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요인에의해 생긴다고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관련 산업, 수요 조건, 정부의 사업화마인드와 기회요인 등이 그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천연자원과 노동력같은 요인뿐 아니라, 산업과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종합적 결과이다. 그런 환경 또는 기회요인에 자국의 물리적 사회적 기술을 지혜롭게 가져다 맞추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국가가 겪은 각종 위기와 그 위기를 극복한 경험까지도 국가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경기순환에 대한 최초의 연구자라고 할 수 있는 클레망 쥐글라(Clement Juglar)는 “한 국가의 부는 그 국가가 겪은 위기가 어느 정도 격심했는가로 측정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이란 창조되는 것이지 유산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산업정책하면 일본의 통산성을 떠올린다. 일찍부터 일본에서는 ‘일류 경제에 삼류 정치, 그리고 초일류 관료’가 주식회사 일본을 이끌어 왔다는 말이 있었듯이, 오늘날 일본의 번영을 통산성의 치밀한 산업정책 덕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경제산업성(METI)” 으로 개편되었지만, 과거 일본의 경제· 무역 ·산업 정책 등을 담당하던 통상산업성(MITI)이 그 조직이다. 물론 일본의 고도성장이 통산성의 산업정책 덕이라는 평가와, 통산성때문이 아니라 통산성이 있음에도 성장했다는 양면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하튼 일본의 통산성은 10년 앞을 내다보며 일본의 성장동력을 키워왔다고 자랑한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는 철강·기계 산업, 1960년대에는 자동차·가전산업, 1970년대에는 컴퓨터·반도체산업, 그리고 1980년대에는 통신·정보소프트웨어산업을 키웠다는 것이다. 결과적인 해석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후 10년 세계경제를 견인한 성장동력들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제 이름이 바뀌어 경제산업성이 된 이 조직이 미래의 성장동력을 디자인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국가의 성장을 위해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기업인과 함께 한 나라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협조하는 것이 국가경제에 해가 될리가 없다. 단지 정부가 기업가 정신을 해치고 강제적 자원분배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사실은 어느나라고 조금씩 환경이 다르고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별히 앞선 나라를 따라가던 시절에는 산업정책이 많은 효과를 보았다는 증거도 충분해 보인다.
한국과 아일랜드는 닮은꼴이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것처럼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다. 두 나라 국민들은 근면함에 있어서도 유사하다. 두 나라는 지금 모두 IT강국으로 일어섰다. 1980~90년대 한국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네 마리 용’으로, 아일랜드는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로 불리며 고속 성장의 신화를 만들며 중진국으로 발돋움했다. 1984년 한국의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던 시절 아일랜드의 국민소득은 1만3753달러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반면 오늘날 아일랜드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영국의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을 뛰어넘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일본과 두 배 이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한국과 아일랜드가 이렇게 번영시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또 그 차이가 벌어진 것일까? 한국경제연구원의 이병기는 아일랜드는 EU에 대한 시장개방, 외국인 직접투자 확대 등 대외개방과 함께 과감한 규제개혁을 단행한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산업정책의 우월함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시대에 적합 했느냐 아니냐 의 문제가 더 중요한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