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좋던 나쁘던 상관없이 함께 살아간다.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내 삶의 질을 나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침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이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거친 것이다. 내 앞의 책상에는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 놓여있다. 내가 혼자 만든다면 아마 평생을 바쳐도 얻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실제로 그 물건들의 일부는 누군가 평생은 아니라도 오랜 세월을 숙련해 만들어 낸 것이다. 어제 본 영화나 지금 이 순간 듣고 있는 음악도 누군가 평생을 그것에만 매달렸기에 오늘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분업과 협업이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독재자의 지시도 없이 자신의 일에만 집중해도 전체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고, 또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바로 경제성장이라는 말이다.
<귀족의 천국, 농민의 지옥>이라는 말은 근대 이전 러시아를 빗대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러시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였다. 과거의 경제는 그야말로 불공평한 경제였으며, 착취의 경제요 권력에 의해 부가 결정되는 사회였다. 기원 전 400년경에 살았던 역사 학자 헤로도토스는 고대의 이집트를 농부들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렀지만, 데틀레프 귀르틀러는 <부의 세계사>에서 이집트의 농부도 ‘누더기를 걸친 거지꼴’로 노예 같은 삶을 살았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고대 아니 중세까지 부자들은 권력자들이었다. 과거의 대표적인 부자는 로마의 카이사르나 중국의 진시왕 같은 황제들이었다. 이 시대에는 권력을 가진 계급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었으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은 물론 그들의 노동력을 종교나 왕을 위해 사용해야 했다. 현재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종교의 건축물 그리고 왕궁의 형태로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그런 착취의 흔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군사력이 경제력이며 권력이었고 그런 권력이 바로 부였다. 한 나라의 풀 포기 조차 왕의 소유이던 시절, 평등이란 사치일 뿐이며 이런 사회에서의 경제성장이란 단순히 이쪽의 부를 저쪽으로 옮기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진정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시장이 발전하고 ‘상인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후였다.
1953년 만들어진 영화 <제 17포로수용소>에서도 우리는 그런 시장을 만날 수 있다. 1944 년 다뉴브 강변에 위치한 독일의 제17 포로수용소에는 전투 중에 격추된 미공군의 포로들이 수용 되어있다. 이 곳에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장이 생겨난다.
영화의 주인공 쉐프턴(윌리엄 홀든)은 쥐를 이용해서 경마장도 만들고 도박장까지 개장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다. 마권은 쉐프턴에게 구매하고, 쥐들도 선수처럼 이름이 있다. 이 곳에서는 담배가 화폐역할을 담당한다. 그 화폐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고 파는 시장을 만든 것이다.
포로수용소에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식료품과 생필품이 분배된다. 하지만 포로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것만 소비하는 것보다 교환을 통해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예를들어 채식주의자인 포로는 깡통에 든 고기를 잼이나 마가린으로 교환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곳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된다. 포로들이 추가로 수용소로 유입되면 식료품가격은 상승하고그 가격차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자연스럽게 빨래를 해주거나 그림을 그려주는 서비스 시장이 형성되기도 하고, 신용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시장도 만들어 질 것이다.
외부에서의 공급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시장을 통해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내고 또 행복해진다. 이처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일을 나누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만남이 많아지면 필요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 진다. 그런 것이 진정한 잡 세어링이다. 만남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알아채리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가 창출된다. 그렇게 창조되고 거래되는 것은 제품과 서비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식이 교환된다.
이처럼 시장은 참여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아니 시장의 발달이 바로 경제성장이다. 내다 팔 곳이 없다면, 스스로 사용할 것이상 만들 이유도 없으며 그런 사회에서 경제가 성장할리 만무하다. 국가나 개인이 경제를 성장시키고 부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시장이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의 꽃시장, 영국의 보험시장과 금속시장, 미국 월가의 금융시장과 시카고의 곡물시장 모두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시카고의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는 1848년 4월에 설립된 세계최초 최대의 선물거래소로 전세계 곡물선물거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세계의 자본은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 거래된다. 그리고 그 핵심에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NYSE)가 있다. 세계의 주요 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되어 있는 곳이다. 그 밖에도 세계의 꽃은 네덜란드의 알스미어(Azlsmeer) 화훼경매시장으로 모인다. 세계의 꽃 80%가 여기서 거래된다. 생선은 일본의 동경에 자리잡고 있는 쯔기지(Tsukiji)시장에 모인다.
이런 시장의 발전을 통하여 오늘 날의 시장에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거래되고 있다. 그런 거래를 통해 인류는 부를 만들어 온 셈이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부를 모두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오늘날 개인이 보유하고 있으며 거래될 수 있는 재산만 추정해 보아도 2019년 기준 약 360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현금, 주식, 부동산 등 우리가 보통 재산이라고 부르는 개인의 부를 추정해 본 결과에 의하면 그렇다.
이런 경제의 성장은 시장의 발전과 함께 했다. 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사실 경제학에는 경영학과 같은 경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학은 평화의 학문인 셈이다. 경제학은 거래를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우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것만 해서 내다 팔면 되고, 비록 모든 것에서 남보다 부족하다고 해도 상대적 우위에 따라 남이 안 하는 것을 만들면 된다. 이웃이 부자가 되도 배가 아프지 않다면 그렇다. 여하튼 그렇게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해서 이웃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자신의 것을 팔고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사오기만 하면 된다.
경제학이 평화의 학문이라고 해서 경쟁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기고 짐에 따라 승자가 모두 가지는 경영학에서의 경쟁이 아닌 교환이나 거래를 위한 경쟁을 그려낸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보다 더 나은 가격으로 더 많이 팔아 부자가 되기 위해, 더 좋은 물건 또는 남들이 가지지 않는 물건을 만들어 낸다. 결국 시장의 발전이 경제성장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