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경제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을 줄여주고 신뢰를 높여주었기때문이다. 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돈이 시장에 돌아야 한다. 금으로 교환해주는 돈만큼 신뢰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한 돈도 그 기능을 비교적 훌륭하게 수행해 오고 있다. 문제는 이 화폐의 가치가 가끔 불안정하게 변한다는 점이다. 화폐가 불안정하다는 말은 그 만큼 신뢰가 떨어진다는 말이며, 신뢰가 떨어지는 만큼 거래비용을 증가시킨다. 당연히 시장에서의 거래가 줄어들게 되고, 궁극적으로 한 사회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제 1 차 세계대전후 세계는 역사상 일찌기 경험하지 못했던 화폐의 불안정성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무대는 독일, 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였다. 특별히 1923년 독일은 1개월 동안 325만 %라는 천문학적인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독일은 1922년 여름에 이미 초 인플레이션의 단계에 돌입한 상태였다. 독일의 당시 바이마르공화국 정부가 전쟁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신규 국채를 발행하여 헐값에 내다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채가 늘어나면 결국은 돈이 증가하게 되어있다. 1923년 1월 11일 프랑스와 벨기에 군대는 독일 정부의 배상금 지불유예 선언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 공업의 심장부인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였다. 이때 공황 심리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마르크화가 손에 들어오는 즉시 외국돈이나 실물로 교환하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마르크화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나라에 화폐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결국 경제는 파탄이 나고 말았다. 이런 문제는 독일 중앙은행이 미국의 금 시세에 연동하는 새로운 마르크화를 발행하여, 기존의 마르크화와 1대 1조로 교환해 주면서 가라 앉았다.
1950년대 이후에도 이런 종류의 인플레이션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도 1989년에서 1990년까지 기록적인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과도한 통화량 증가다. 이런 통화량 증가는 정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됨으로서 나타난다. 부채가 돈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자.
돈 가치의 불안정은 그 나라의 정권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그래서 케인즈는 “사회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자 할 때 가장 교묘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것이다”라고말했다. 장개석의 국민당이 지배한 지역의 물가가 폭등하자, 중국공산당이 쉽게 이 지역을 장악하였다. 남미의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의 정부가 연속적으로 군부에 전복당한 것도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다시 실물자산 매입이 증가하고 다른 나라의 통화를 선호하게 된다. 결국 국민들은 높은 물가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밀튼 프리드만은 <돈의 이야기>로 번역되었던 그의 저서 <Money Mischief(1994)>에서 인플레이션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제때에 치유하지 못하면 심할 경우 사회 전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화폐는 이처럼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존재이지만 잘못하면 시장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원유가격의 인상과 곡물가격 같은 실물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대부분 금융의 불안으로 생기고 있다.
시장경제는 가격에 의해 작동되는 시스템이다. 통화의 불안정은 가격을 흔들고 가격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이 축소된다.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유경쟁뿐만 아니라 신뢰 그리고 화폐가치의 안정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정부가 경제에 도움이 되면서도 통화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을 통화정책이라고 한다. 통화정책은 재정정책이나 조세정책과 함께 중요한 거시경제정책 수단의 하나다. 차이점은 재정정책과 조세정책은 정부가 직접 수행하지만, 통화정책은 법상 정부조직으로 분류되지 않는 중앙은행이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폐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에 맡겨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어야만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착취해온 금과 은이 이 두 나라가 부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금은 그야말로 돈이다. 한 나라의 정부가 만든 돈이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그야말로 기축통화였다. 그런데 오늘과 같이 금과 연관이 없는 돈이 많아져도 국가의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난 역사를 살펴본 결과 돈의 증가가 경제에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데이터의 활용 방법과 해석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는 것이 거시경제 이론이지만, 아무래도 통화의 증가는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단 조건이 있다. 실물경제의 성장에 맞춘 적절한 통화공급이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런데 그 적절하다는 것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돈을 늘리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간단한 경제이론으로 필립스 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반비례한다’는 내용이다. 이 말대로라면 경기가 지나치게 활황이거나, 불황일 경우 정부에서 물가를 조절함으로써 경제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열방이라는 마을에 경기가 나빠져서 실업자가 많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리고 정부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통화량을 늘렸다고 해보자. 그러면 통화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돈이 많이 돌 것이고 결국은 인플레이션이 올것이다. 인플레이션이란 물가상승률이 높아진다는 말이고 물가상승률은 실업률과 반비례하니까 실업률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잘못하면 스테그플레이션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그플레이션이란 필립스 곡선이 시사하는 바와는 달리, 물가도 상승하면서 동시에 실업률도 높아지는 현상이다. 오늘날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단기에는 필립스 곡선의 내용이 성립하지만 장기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장에 따라 돈이 증가하지 않으면, 경기가 침체될 수도 있다는데는 동의한다. 돈이 부족하면 디플레이션 즉 물가가 하락하게 된다. 금본위제에서도 금이 부족하면 디플레이션이 있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 1849년 금을 캐기 위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49년에 캘리포니아로 왔다고 해서 포티나이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금이 무한정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1952년 골드러시가 끝나갈 무렵 미국은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반면 1897년 캐나다의 유콘(Yukon)에서 새롭게 금광이 발견되면서 캐나다의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돈과 경제가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오늘날의 돈은 금보다 불안정한 화폐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돈과 실물경제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실물경제에서처럼 금융경제에서도 하나의 등식만을 이용해 경제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해 보기로 하자. 그 등식은 다음과 같다.
MV = PY
이를 다시 풀어서 쓰면, 통화량(M) X 유통속도(V) = 물가지수(P) X 생산량(Y)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식은 1920년 예일대학의 통화주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가 화폐량과 유통속도가 실물 거래량과 항상 일치한다는 교환방정식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등식은 항등식이므로 정의상 늘 정답이 된다. 그런데 이 방정식을 둘러 싸고 케인지언과 통화주의자들의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통화량이란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살펴본 바로 그 돈이다. 유통속도란 그 돈이 일정기간 동안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100명이 사는 열방이라는 마을에 돌고 있는 돈이 모두 100억원이며 돈이 모두 1원짜리 지폐라고 하자. 만약 이 1원으로 된 지폐가 모두 일년에 5번 사용된다고 하면, 이 열방이라는 마을의 돈의 유통속도는 5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열방의 마을에서 1년간 거래된 총 금액은 500억원(100억 X 5)이 된다.
거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매출이 발생했다는 말이며, 결국 이 마을이 일년동안 만들어낸 서비스와 상품의 총 가치를 의미한다. 즉 이 마을의 총생산이 500억이라는 이야기다. 이 돈은 다시 생산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소득으로 분배될 것이다. 따라서 총소득 역시 500억원이 된다. 총생산이란 생산된 서비스나 물품의 개수에 가격을 곱해준 것임으로, 통화량(M) X 유통속도(V) = 물가지수(P) X 생산량(Y)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전 통화량 즉 M을 늘리면 경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피셔의 방정식은 늘 성립해야 되는 항등식이니, 통화량의 증가는 어떤 형태던지 위의 식의 다른 변수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위의 열방마을에 새로운 돈을 투입했다고 해보자. 이 경우 통화주의자들은 사들이 매우 합리적이어서 돈을 증가시켜 보아야 다른 것은 변하지 않고 물가만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MV = PY에서 통화주의자는 화폐속도와 생산량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물가만 돈이 증가한 만큼 오르게 된다. 통화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생산량은 고정되고 물가만 오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통화량(M) X 유통속도(V) = 물가지수(P) X 생산량(Y)에서 왼쪽의 M이 커지면 V나 Y는 가만히 있고 오른쪽의 P가 상승할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돈이 늘어나자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기분에 소비를 늘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이런 소비는 돈의 유통속도를 증가시키고 생산자들은 수요가 늘어남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제학자들을 케이즈언이라고 한다.
실제로 화폐와 유통속도가 늘어나면 단기적으로는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2008년의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각국이 서로 경쟁하듯이 엄청난 통화를 공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반면 그 방법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이 모두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케인지언은 “통화량X유통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정부가 유통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통화주의자는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케인지언들은 어떻게 통화량을 늘리지 않고 유통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일까?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돈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끌어오면 된다. 이 돈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나누어 주면, 새로운 수입이 생기게 되고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돈을 추가로 찍어낸 것이 아니니, 국가 전체로 보면 통화량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부자들은 국채가 주는 이자를 소득으로 벌어들일 수 있으니 손해볼 일이 없다. 수입이 생긴 마을 사람들은 그 돈으로 무엇인가 소비하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물건을 판 사람들 역시 수입이 생긴다. 이렇게 거래가 늘어난다는 말은 결국 돈의 유통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이다.
케인즈언들의 주장대로라면 통화량 증대 없이도 경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반면 통화주의자는 그런 케인지언 식으로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부자들의 돈을 정부가 가져온다면 시중에 돈이 줄어들고 결국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돈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자가 올라가 통화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자가 올라간다는 말은 돈을 빌려쓰기 어렵다는 말이며, 부채가 줄면 돈이 사라진다. 이자가 오르면 사람들이 남의 돈을 덜 쓰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부채가 즐어드는 만큼 돈이 감소할 것이다. 부채가 돈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유통속도가 늘어나더라도 통화량 감소를 상쇄하게 되어 전체적으로는 의미가 없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통화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 통화량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통화주의자와 케인지언의 또 다른 차이는 돈의 유통속도에 있다. 케인즈는 화폐 속도가 변한다고 주장한다. 또 경기침체시에는 화폐를 공급하더라도 유동성의 함정 때문에 화폐공급량에 주는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화주의자 프리드먼은 화폐속도와 소비속도가 크게 변하지 않음을 주장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유통속도라는 것은 사람들이 돈 쓰는 습관이며, 따라서 한 사회에서의 유통속도는 거의 일정하다는 것이다.
사실 화폐 유통 속도는 결과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화폐의 유통 속도가 호황기에는 빨라지고, 후퇴 시에는 느려진다는 추정은 해볼 수 있으며, 상대방에게 돈을 떼일 위험 같은 것이 늘어나면 유동성이 줄어 들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통화의 유통속도는 소비자들의 소비패턴과 신용카드, 온라인결제, 핸드폰 결제 등 지불 관습 등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음으로 그 속도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정책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측정해 보지만, 수많은 구성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며 변하고 있기 때문에 확증을 가지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독일, 초인플레이션 발생 후 100년